[국정농담] 코로나 심각한데, '개고기 금지'가 왜 거기서 나와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방역 메시지 브리핑서 "文, 개 식용 금지 검토"

갑자기 튀어나온 발언, 주례회동 이슈 뒤덮어

동물·육견단체 충돌...李·秋·洪도 文 입장 동조

반려동물 가구 증가에 정치권도 '표밭' 관심 ↑

공식 통계는 없어...靑 "당장 시행 아냐" 수습

찬반여론 여전히 '팽팽'...사회적 합의 더 필요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27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주례회동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개 식용 금지 검토” 발언이 때 아닌 ‘보신탕 찬반’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3,000명을 넘은 것을 계기로 문 대통령과 김부겸 국무총리가 방역 대책을 주로 논의한 자리에서 예기치 않게 개 식용 관련 발언이 더 주목받았다는 평가다. 여야 대선 주자들도 환영의 뜻을 밝힌 만큼 관련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동물권 신장, 반려동물 보호 대책과 달리 개 식용 금지는 아직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상황이 아니다. 문 대통령 언급으로 공론화는 됐지만 개 식용과 관련해서는 찬반 의견 어디도 월등히 우세하지 않은 상태다. 공식적인 정부 조사와 여론 수렴 절차조차 밟지 못한 상황이라 최종적인 사회적 합의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7월3일 북한에서 온 풍산개 '곰이'와 원래 키우던 풍산개 '마루' 사이에 낳은 새끼들을 돌보고 있는 사진을 SNS에 게재했다. /사진제공=청와대


브리핑 중 갑자기 튀어나온 “文, 개 식용 금지 검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27일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김 총리로부터 유기 반려동물 관리체계 개선과 관련하여 반려동물 등록률 제고, 실외 사육견 중성화 사업 추진, 위탁 동물보호센터 전수점검 및 관리·감독 강화, 민간 보호시설 신고제 도입, 동물보호관리시스템 내실화 등에 대해 보고를 받은 뒤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 대변인이 이날 전한 내용은 사실 기자들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었다. 문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매주 월요일 국정을 논의하는 주례회동은 대체로 총리실이 홍보를 주관하는 행사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날 청와대가 주례회동 내용을 이례적으로 브리핑하는 이유를 문 대통령의 ‘방역 메시지’ 때문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주부터 미국 유엔총회 순방, 북한 김여정 담화과 미사일 발사 등에 대한 대응으로 방역 관련 메시지를 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 사이 확진자 수는 3,000명을 넘어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어떤 메시지라도 내야 할 상황이었다.

이날 브리핑도 본래 방역 메시지에 방점이 찍히기는 했다.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하여 보고를 받은 후 ‘단계적 일상 회복의 조기 달성을 위해서는 추석 연휴 이후 확진자 증가 상황의 안정화가 관건이므로 총리를 중심으로 정부가 방역 대응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또 “확진자 급증에 따른 의료 대응에 지장이 없도록 생활치료센터와 병상 확보 문제를 관계 부처와 지자체가 각별하게 챙겨 달라”는 말도 했다고 알렸다.

다만 문 대통령의 긴 방역 메시지는 마지막에 붙은 개 식용 금지 검토 발언 한 줄에 대부분 묻히고 말았다. 여론은 ‘방역 총력 대응’보다 ‘보신탕 금지’에 더 즉각 반응했다. 청와대가 개 식용 금지 발언으로 문 대통령의 방역 메시지를 굳이 가린 이유는 현재까지도 ‘오리무중’이다.

문 대통령은 토리, 마루, 곰이 등 반려견들과 함께 생활하는 애견인으로 알려져 있다. 동물보호단체 카라는 지난 2018년 7월 "마루의 친구들을 지켜달라"며 개 식용 금지를 촉구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에 전달하기도 했다. 같은 해 8월에는 문 대통령의 딸 다혜씨가 반려견 중 토리를 서울광장에서 열린 개 식용 반대 집회에 데려가 눈길을 끈 적도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활동가 등이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동물학대 처벌 강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동물단체·육견단체 충돌…이재명·추미애·홍준표도 文에 동조

문 대통령의 한 마디에 여론은 갈렸다. 애견인들은 마치 문 대통령이 개 식용 금지를 당장 지시라도 한 것처럼 ‘환영한다’고 반겼다. 반면 ‘이 시국에 갑자기 개 얘기는 왜 하느냐’는 비판 목소리도 나왔다.

관련 단체들도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45개 단체는 2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문 대통령의 ‘개 식용 금지’ 검토 지시 발언을 적극 환영하며 실질적인 성과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소수의 개 농장 주인을 위해 많은 국민의 염원인 개 식용 금지를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정부와 국회는 하루빨리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촉구했다.

반면 육견단체는 대통령 발언을 두고 “식용견과 반려견을 구분하지 않았다”며 반발했다. 식용으로 사육하는 개는 반려견과는 품종과 사육 방법이 다르다는 이유였다. 돼지고기, 소고기와 개고기 간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개고기 판매업자들의 지적도 나왔다.

여권 대선주자들도 문 대통령 발언에 호응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문 대통령의 개 식용 금지 검토 지시를 거론하며 “당연한 조치이고 크게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지사는 “반려동물을 가족과 같이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개 식용은 사회적인 폭력일 수 있다”며 “개 식용을 단순히 야만적 문화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다. 반려동물에 대한 잔인한 학대와 도살, 비위생적인 사육, 불안전한 유통구조를 개선하는 동물복지의 필요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지사는 지난달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 식용을 금지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성남시장이던 2016년 성남 모란시장의 개 도축 시설을 폐쇄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SNS에 “여의도에서도 심심찮게 보신탕을 먹으러 몰려다니는 사람들을 불편한 심정으로 목격하곤 했다”며 문 대통령의 지시를 가리켜 “참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다른 선진국도 ‘혐오스러운’ 먹거리가 있다며 나라마다의 오래된 식습관과 문화이기에 존중되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면서도 “지난해 기준 반려동물 가구가 638만가구가 넘고 반려동물은 860만마리를 넘어섰다. 이제 세계 10대 경제대국에 영양 포화 사회에 사는 우리로서는 새로운 사회적 용기와 사회적 결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대선주자인 홍준표 의원도 30일 대구 칠성시장을 찾아 “개가 자식처럼 반려견이 된 시대가 돼서 이제는 식용하는 것은 부적절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 발언에 동조했다. 칠성시장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개고기를 판매하는 시장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개인적으로는’ 개 식용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홍준표 의원이 30일 대구 칠성시장을 찾아 시민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묵은 논란이지만…반려동물 가구 증가에 정치권도 ‘표밭’ 관심

개 식용 문제는 그간 논란이 끊이지 않은 문제다. 그만큼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란 뜻이다. 2001년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 야만인”이라며 한국의 개고기 식용 습관을 비난하기도 했다. 최근엔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정치권에서도 이들의 표심을 적극 의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8년에는 ‘개를 가축에서 제외해달라’는 국민청원에 청와대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청와대는 그해 8월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사회적 인식 변화, 국제적 추세에 따라 소비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그 추세에 맞춰 나가야 한다”면서도 “다만 법으로 개고기 식용을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반대가 많고 관련 종사자들의 생계 대책 등도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현재 국회에는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개식용금지법(동물보호법 개정안)이 계류 중인 상태다.

27일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312만9,000가구가 넘는다. 이는 전체 가구의 15%에 달하는 수치다. 이 중 개를 키우는 가구가 242만3,000가구(11.6%)로 가장 많았고, 고양이를 키우는 가구는 71만7,000가구(3.4%)였다. 등록 가구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반려동물 가구까지 합하면 그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추정이다.

반면 국내에서 사육·유통되는 식용견에 관한 정부 공식 통계는 없다. 가축에 개를 포함하면 개 식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는 동물보호단체들의 반대 때문이다. 다만 2017년 이정미 전 정의당 의원과 동물보호단체 카라 임순례 대표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8평 이상 가축분뇨처리시설 신고 의무가 있는 국내 개농장은 최소 2,862개였다. 이곳에서 기르는 식용견의 수는 78만1,740마리에 달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소규모 개농장을 합하면 식용견의 수는 연간 100만 마리의 달할 것이란 게 이 전 의원과 임 대표의 추정이었다.

박수현 국민소통수석. /연합뉴스


靑 “개고기 금지, 오늘 내일 시행 아냐” 수습…찬반 여전히 팽팽

개 식용과 관련한 여론은 여전히 팽팽하게 나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알앤써치가 지난 29~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132명을 대상으로 개 식용 전면 금지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 ‘찬성한다’는 의견은 36.3%, ‘반대한다’는 27.5%로 집계됐다. ‘잘 모르겠다’는 의견 유보층도 36.1%에 달했다. 개 식용과 관련해서는 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지시 한 마디로 모든 게 바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숙의가 더 필요하다는 의미다.

방역 문제가 위중한 가운데 의도치 않게 개고기 논란이 불거지자 청와대도 수습에 나섰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29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개고기 식용금지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제는 문화가 바뀌었다”면서도 “대통령님께서 검토 지시를 하셨다고 그당장 오늘 내일 실행이 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박 수석은 “시간을 가지고 오랫동안 차분히 준비를 하고 국민 정서와 이해 당사자들 입장까지 다 고려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지시로 될 것이 아니라 법률로 될 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박 수석은 이어 “동물보호법 같은 것도 개정해야 하고 법률안이 제출되어 있는 것도 있다”며 “이 문제는 정부가 미리 현황부터 파악해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이후 국회가 법률로 추진해야 하고 공청회도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해당사자들을 위한 다양한 대책들도 당연히 꼼꼼하게 배치가 돼야 한다”며 “검토를 해 보라고 지시한 대통령의 말씀이 당장 오늘 내일 실행이 되는 것을 전제로 기사가 작성이 되는 것은 그렇게 적절해 보이지 않다”고 밝혔다.

실제로 정부가 내놓은 동물 관련 개선책에는 일단 개 식용 문제가 전부 빠졌다. 28일 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동물을 물건이 아닌 동물 그 자체로 인식하고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의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됐다. 임세은 청와대 부대변인은 “민법 개정안은 ‘동물은 물건이 아님’을 선언하는 조항을 신설해 동물을 생명체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현행법에는 동물이 ‘물건’으로 취급되고 있어 동물학대에 대한 합당한 처벌과 충분한 동물 피해 배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한 법률 개정안”이라고 설명했다.

30일 김 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공개한 ‘유기 반려동물 관리체계 개선방안’에도 개 식용 얘기는 없었다. 정부는 미등록 동물의 공공시설 서비스 제한, 등록의무지역 확대 등 정책 수단을 동원해 반려동물 등록률을 2020년 38.6%에서 2024년 7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실외사육견 전국단위 중성화 사업 △반려동물 인수제 도입 시·도 광역단위 전문포획반 구성 △민간동물보호시설 신고제 도입 등이 포함됐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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