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수박’의 고장 광주 투표율 37.7%의 의미[정상훈의 지방방송]

<18>광주…여의도에 불어 닥친 ‘수박’ 논쟁

민주당 집안싸움에 광주 투표율 최저 기록

“민주화 탄압용어가 민주당에서 나와” 개탄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3기 원내대표단이 지난 15일 오전 물가폭등 점검을 위해 서울 영등포구 농협하나로마트 여의대방로점을 찾아 관계자로부터 수박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대표적 수박 산지는 경남 함안, 전북 고창, 경북 고령 등입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수박의 고장이라 하면 상당수가 무등산을 끼고 있는 광주를 꼽습니다. ‘무등산 수박’ 덕분입니다. 무등산 수박은 조선시대 임금님 진상품이었습니다. 지금도 20㎏가 넘는 무등산 수박은 가격이 수십만 원에 달합니다. 그마저도 백화점에나 가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직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바야흐로 수박의 계절입니다. 그런데 함안도 고창도 고령도 광주도 아닌 서울의 여의도, 특히 서여의도에 ‘수박’이 풍년입니다. 강성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누가 진짜 민주당 지지자인지, 가짜 지지자인지 구분하는 언어로 ‘수박’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수박 감별사’까지 나올 기세입니다. 마치 탄핵 직전 박근혜 정부의 ‘진박 감별사’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정작 수박의 고장이자 민주당의 정신적 고향인 광주는 수박 논쟁에 피로감을 느끼는 모습입니다. 지난 1일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주의 투표율은 37.7%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습니다. 유권자 세 명 중 한 명 정도만이 겨우 투표장을 찾은 셈입니다, 광주 투표율이 전국 최저를 기록한 것은 모든 선거를 통틀어서 이번이 처음입니다.

광주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한 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은 광주 최저 투표율 사태를 두 가지 이유로 분석했습니다. 첫 번째는 ‘어차피 당선은 민주당’입니다. 광주는 5·18 민주화운동 등 역사적 이유로 인해 보수정당 비토 정서가 매우 강한 곳입니다. 강력한 무소속 후보가 나오지 않는 이상 민주당 후보가 당선됩니다. 그래서 과거에도 지방선거 투표율은 전국 평균보다 낮았던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투표율이 40%에도 미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광주 시민들은 자신의 한 표가 서울·경기 등 타지에 나가 있는 친척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 이유로 설명이 될 것 같습니다. 바로 ‘민주당에 대한 심판’입니다.

제8회 지방선거일인 1일 광주 남구 한 태권도장에 마련된 진월5투표소에서 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당은 지난 대선에서 졌습니다. 광주는 84.82%라는 압도적인 득표율을 이재명 후보에게 안겨줬지만 결국 0.73%포인트(p) 차이로 졌습니다. 졌음에도 반성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계파싸움에만 몰두했습니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골프와 선거는 고개를 쳐드는 순간 진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오히려 선거에서 졌음에도 계속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광주 시민들이 보수정당에 투표하기에는 아직은 심리적인 거부감이 큽니다. 앞서 설명 드렸던 역사적 이유 때문입니다. 이에 광주 시민들은 투표장에 오지 않는 것으로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했습니다. 광주 투표율 37.7%는 반성하지 않는 민주당에 대한 회초리였던 셈입니다. 결국 민주당은 단 두 달 만에 0.73%p ‘석패’를 12 대 5 ‘대패’로 만들었습니다.

민주당의 수박 논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당 재건의 임무를 안게 된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수박 이런 단어 쓰는 분은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뒤 문자메시지로 수박 100여 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 비대위원장이 ‘수박’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한 대상은 주요 당직자들이나 국회의원들이었습니다. 당의 책임 있는 인물들이 분열의 언어를 쓰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부 지지층들에게는 본인들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생긴 해프닝입니다.

그런가하면 전북 고창이 고향인 한 민주당 의원은 고향 특산품인 고창 수박을 주변에 선물했다가 이것이 기사화가 되면서 곤욕을 치렀습니다. 이 의원은 매년 이맘때마다 농촌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수박을 돌리곤 했는데 올해는 이 ‘죄 없는’ 수박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만약 이 의원이 올해만 수박을 안 돌렸다면 그 자체로도 또 논란이 됐을 것 같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 첫출근해 의원실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호남 출신의 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수박’에 대한 아픈 기억을 꺼냈습니다. 군사독재 시절 공안당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연행된 이들에게 “너는 겉은 모범생처럼 생겨서 속은 완전 빨갱이”라고 말하며 ‘수박’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입니다. 이 의원은 “한때 민주화 투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썼던 표현이 민주당에서 나오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면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은 민주당 내부에서 자정의 목소리가, 그것도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재명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세상을 바꾸는 긍정(포지티브)의 힘’이라는 글을 통해 “모멸감을 주고 의사표현을 억압하면 반감만 더 키운다”며 본인의 지지자들에게 문자폭탄과 혐오표현 사용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 의원은 지난 18일 인천 계양산에서 지지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과도한 표현은 공격의 빌미가 된다. 표현을 긍정적으로 해 달라”며 다시 한 번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수박은 죄가 없습니다. 서여의도에서도 맘 편히 수박을 먹을 수 있는 날이 다시 돌아왔으면 합니다.

학창시절에 ‘지방방송 꺼라’는 말 좀 들은 편입니다. 수업시간에 많이 떠들었단 뜻이겠죠. 그때 다 하지 못한 지방방송을 다시 켜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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