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 국가안보실이 참여한 핵심신흥기술대화 첫 회의에서 인도를 미래 기술협력 파트너로 지목하면서 한미 양국이 공급망 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도태평양 국가들과의 경제안보 연대를 확장해나가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한미일 차원에서도 안보실장 회의를 열고 ‘공급망 조기 경보 체계 강화’, ‘기술 보호 및 인공지능(AI) 거버넌스’ 등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해나가기로 합의했다. 한미일 세 나라는 또 다른 인도태평양 내 주요국인 호주와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경제안보 분야에서 밀착하고 있다.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은 10일 “조태용 국가안보실장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차세대 핵심신흥기술대화를 열고 내년에는 인도를 포함한 비공식 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왕윤종 대통령실 경제안보비서관은 “한미 양국은 이번 회의에서 국제사회에서 첨단기술 발전을 선도할 수 있도록 협력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이미 미국은 올해 인도 및 싱가포르와도 핵심신흥기술대화를 개최했다”고 설명했다. 올해 미국이 개별 국가들과 기술 개발 협력의 청사진을 그렸다면 내년에는 다자간 협력으로 이를 강화시키려고 하는 셈이다. 이미 한미와 경제·안보 각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 중인 호주까지 더해질 경우 인도태평양 지역 내 ‘경제안보 펜타곤(오각 협력)’을 형성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준구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금 과학기술과 안보, 경제는 융합되는 측면이 있다”며 “특히 기술 표준 경쟁에서 한미 양국이 협력하기로 한 것은 표준 선도 국가가 결국 혁신을 주도한다는 점을 겨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양국은 미래 핵심신흥기술대화를 계기로 한국국가기술표준원(KAST)와 미국 국립표준기술원(NIST)이 양해각서(MOU)를 맺고 첨단 기술 표준을 마련하는 데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차세대 미래 핵심 기술 분야별로 협력 강화를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했다. 우선 바이오 분야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미국 국립과학재단이 협력해 1000만 달러(약 132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또 한국 생명공학연구원과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는 바이오 파운드리 분야 협력을 위한 MOU에 서명했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미국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와 한국 첨단반도체기술센터(ASTC)를 포함해 민·관·연구기관 사이의 협력 기반을 강화할 계획이다.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와 북서태평양국립연구소(PNNL)이 ‘나트륨 금속 할라이드’ 등 차세대 에너지 저장 방식에 대한 공동 연구를 심화해 나간다. 뿐만아니라 미국 국립연구소와 한국의 여러 연구기관 사이의 협력을 확대해 리튬금속·전고체·나트륨 이온 배터리 등 차세대 2차전지 기술 개발을 주도할 기틀을 마련한다. 이외에도 초전도 양자컴퓨팅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과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원(NIST)이 힘을 모으기로 했다.
한미일은 인도적 지원 분야에서도 협력을 가속화할 전망이다. 미셸 수밀라스 미국 개발협력기관 국제개발처(USAID) 정책기획학습국장은 이날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초 인도적 지원 분야에 초점을 맞춘 한미일 인도주의 대화가 열릴 것”이라며 “기후변화 등으로 발생한 인도적 재난을 해결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8일 한미일 안보실장 대화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설리번 보좌관과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을 관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은 과거보다 더욱 커지고 있다”며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합의 사항이 잘 지켜지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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