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회 요직 섭렵한 6선 '자타공인 권력실세'

'MB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별세

평사원서 CEO로 '흙수저 신화'

IMF 위기 땐 금융개혁 주도나서

MB 대권도전 때 권력판도 바꿔

'만사형통' '영일대군' 불리기도

당내 집중견제에 정치 2선 후퇴

이상득(왼쪽) 전 국회부의장이 동생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2011년 청와대에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빈소를 조문한 뒤 나와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2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9세.

이 전 부의장은 최근 지병으로 서울대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 전 부의장은 정치권과 경제계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기며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겪고 평사원으로 대기업에 입사해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른 입지전적 성공담으로 이 전 대통령과 함께 ‘샐러리맨 신화’ ‘흙수저 신화’를 쓴 인물이다.

이 전 대통령은 이날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았다. 그는 “정치는 겸손하게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한다는 생각으로 하라고 (이 전 부의장이) 조언했다”며 “천국에 가서 어렵게 살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기쁘게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1935년생인 이 전 부의장은 포항 동지상고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미국 캠벨대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61년 코오롱 1기 공채 사원으로 입사한 뒤 17년 만에 코오롱과 코오롱상사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산업화 초기 주력 산업이었던 섬유 회사에서 기틀을 다지고 수출을 주도한 전문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 전 부의장은 1988년 총선(경북 영일·울릉)에서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했다. 내리 6선을 하며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국회부의장과 운영위원장·재정경제위원장 등 당과 국회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에는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으로 금융 개혁을 주도하며 ‘미스터 위기 관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당시 여야 이견으로 금융개혁법 통과가 어려워지자 “대한민국은 여러분의 나라도 아니고 김대중 당선인의 나라도 아닙니다. 국가가 위기입니다. 우리 모두의 나라입니다. 통과시켜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4년에는 당 사무총장을 지내며 박 대표에게 천막당사를 제안했다. 이 전 부의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다 2006년 퇴임 후 대권 도전에 나설 때 이를 뒷받침한 주역이기도 하다.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당’이라 불릴 정도로 당내 의원들의 세력 구도가 일방적이었다. 이 전 부의장은 특유의 정치력과 친화력으로 당내 권력 지형을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이 대등하게 맞서는 구조로 만드는 데 역할을 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와 경선 상대인 박근혜 후보 간 가교로 당 화합에 기여했다는 평도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일등 창업 공신인 고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정권의 2인자’였다. 모든 일은 형님으로 통한다는 뜻의 ‘만사형통(萬事兄通)’, 고향 이름을 딴 ‘영일대군’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그만큼 견제도 집중돼 이 대통령 집권 2년 차인 2008년 18대 총선에 앞서 불출마를 요구하는 이른바 당내 소장·쇄신파 주도의 ‘55인 파동’을 겪었다. 이후 어렵게 6선 고지에 올랐지만 끊임없이 여권 내 권력 투쟁 논란에 서며 결국 2009년 6월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했다.

2011년 보좌관이 SLS그룹 구명 로비 명목으로 수억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현직 대통령의 형으로서는 처음으로 2012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돼 실형을 살다 2013년 9월 출소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최신자 씨와 자녀 지형·성은·지은 씨, 며느리 조재희 씨와 사위 구본천·오정석 씨가 있다. 발인은 26일 오전 6시 30분이다.

23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빈소가 마련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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