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오락가락하던 野 "가상자산 과세"…또 조세저항 덮친다

민주당, 당정 요구에 "수용 불가"

내년 1월 강행땐 시장 혼란 우려

한동훈 "경제만 생각하자" 압박

금융시장 불안에 野 선회 가능성

비트코인이 연일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는 14일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강남점에 거래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비트코인은 13일(현지 시간) 처음으로 9만 3000달러를 돌파한 뒤 반락했다. 성형주 기자




주식투자자들의 반대에도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밀어붙이다가 역풍을 맞았던 더불어민주당이 이번에는 가상자산 과세 방침을 시사하면서 또다시 거센 조세 저항의 파도에 맞닥뜨리고 있다. 아직 가상자산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내년 1월 무리하게 과세를 강행할 경우 투자자 반발은 물론 시장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를 겨냥해 금투세 폐지를 이끌었던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연일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주장하며 민주당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가격이 급등한 반면 국내 증시는 급락하는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민주당도 끝까지 가상자산 과세를 고집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부·여당은 당초 내년 1월로 예정된 가상자산 과세 시점을 최소 2년 뒤인 2027년 1월로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아직 가상자산과 관련된 제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과세할 경우 시장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안성희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가상자산 과세제도 토론회에서 “결손금 이월공제와 기본공제 상향, 과세표준 명확화 등이 보완되지 않은 만큼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암호화자산 자동정보교환체계(CARF)’가 시행되는 2027년에 맞춰 과세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문위원도 이달 12일 정부·여당의 소득세법 개정안 검토 보고를 통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 시행 초기인 만큼 제도 운영에 따른 미비점 등을 보완한 뒤 과세하는 게 원활한 과세와 납세순응도 제고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강조했다.

이달 5일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비트코인이 사상 최고가인 9만 달러를 돌파하는 등 가상자산 가격 급등은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최근 국내 증시 침체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가상자산으로 눈을 돌려 국내 가상자산 거래 대금이 20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당장 내년부터 과세를 강행하면 가상자산 투자로 얻은 연 소득(양도·대여분) 중 250만 원 초과 수입에 대해 22%(지방세 포함)를 세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가상자산 가격 급등으로 대다수 투자자가 과세 대상이 되면 거센 조세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한 대표는 금투세 폐지에 이어 연일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민주당에 압박하고 있다. 그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을 향해 “금투세는 폐지하자면서 가상자산 2년 유예는 뜬금없이 반대로 들고 나오냐”며 “‘경제 문제’는 경제·국민·투자자·청년만 생각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한 대표의 주장대로 금투세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패키지로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금투세 폐지 논란이 일던 8월 “가상자산은 주식처럼 경쟁매매 방식으로 거래되고 있고 투자자들에게 주식과 유사한 투자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며 “금투세 폐지 시 과세 형평성 등을 감안해 가상자산 과세도 유예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상반기 690만 명이던 가상자산 거래가능 이용자는 올 상반기 778만 명으로 2년 만에 88만 명(12.7%) 늘었다. 무엇보다 이들 상당수가 ‘3040 남성’이라는 점에서 한 대표가 과세 유예를 위한 대대적인 여론전으로 청년층 지지를 노린다는 분석이다.

민주당도 ‘수용 불가’ 입장을 마냥 고수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이날 정부·여당의 금투세 폐지에 동의한 이유로 “현재 주식시장이 너무 어렵다”고 밝히는 등 국내 금융시장 전반이 미국 대선의 충격파를 강하게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에도 “준비 없이 급하게 추진된 과세는 정당성을 얻기 어렵고 조세저항과 현장의 혼란을 불러오게 된다”며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지지한 바 있다. 결국 2022년 시행 예정이던 가상자산 과세는 1차(2023년)와 2차(2025년) 등 두 차례 유예를 거쳤고 정부·여당은 현재 세 번째 유예를 추진 중이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가상자산 과세를 강행하기보다는 총선 공약이던 공제한도 5000만 원 상향과 손익통산 및 손실 이월공제를 5년간 도입하는 방안을 두고 국민의힘과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민주당 의원은 “금투세 폐지처럼 요구가 분출되면 과세 유예를 적극 검토하는 단계로 나갈 수 있다”며 “여론의 동향의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15일 회의를 시작으로 소득세법 개정안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지만 정상 운영 여부가 불투명하다. 민주당은 13일 전체회의를 단독 개최한 국민의힘 소속 송언석 기재위원장에 대한 징계 결의안을 제출해 상임위 파행이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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